휴식 같은 작가 최덕희를 만나다.
휴식 같은 작가 최덕희를 만나다.
  • koreaittimes
  • 승인 2012.10.26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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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현재, 대한민국의 가을은 실종 상태. 어느덧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유난히도 더웠던 여름 끝에 겨우 맞은 가을날. 그런 가을날이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겨울에게 바통 터치를 하고 급하게 떠나갔다. 그동안의 가을이 이렇게 짧았던가 몇 장 안남은 달력의 숫자가 원망스러워지는 요즘이다.

숨 가쁘게 시대는 변해가고 속절없이 사람도 변해만 간다. 모든 것이 변해 간다고 계절마저 이렇게 바삐 사라지는 것일까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익숙해진 현대인들. 이제는 계절의 변덕스러움도 적응해야 할 지경이다. 이제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야 할까.

혼란스럽고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우리는 한순간이라도 멈춰 서서 쉴 수 있는 기회를 갈망하곤 한다. 사계절 중 가장 휴식과 닮아있는 계절 가을이 실종된 지금, 좋은 글귀 한 줄과 아름다운 사진 한 컷으로 빈 자리를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자연과 놀다 41

사진작가이자 수필가인 최덕희는 그리움과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어린 시절의 추억과 전원생활의 낭만 등을 편안한 필체로 적어나가고 풍경과 일상의 나무 등을 색다른 프레임 안에 담는 재주가 있는 작가다.

마치 고운 옷을 깨끗이 빨아 풀을 먹이고 다림질을 하여 정성들여 보관하다 자식들 앞에 선보이는 어머니 같은 따스함이 묻어난다.

수필가이자 사진작가인 최덕희씨

최 작가는 지난 4월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사진전 ‘자연과 놀다’를 통해 나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컬러 필터를 통해 표현함으로서 ‘정겨움’ 과 ‘낯설게 보기’를 한꺼번에 시도했다.

카메라의 초첨을 흐트러트리고 독특한 색감의 필터를 사용해 피사체를 표현함으로서 익숙히 보아왔던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동안 익숙하게 그 자리에 서 있어왔던, 그리고 서 있을 것 같던 대상에 대한 다르게 보기. 편안함과 함께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최 작가는 수필 작가로도 인정을 받고 있는데 그의 수필집 ‘자연과 놀다’에서도 오래전 잊고 있었던 그리운 추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자연과 놀다 43

‘다시 가고픈 여름날의 정경’ 중

“……깜깜한 밤하늘에 머리 위로 쏟아지는 무수한 별들, 멍석에 누워서 은하수가 입에 닿으면 햅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정말 은하수가 입에 닿으면 햅쌀이 나왔다. 달무리를 가까이 하면 비가 곧 온다고 말씀도 하셨다. 날씨도 거의 일기예보처럼 잘 맞추었다……호롱불 밑에 파란색 모기장은 어린 눈에 환상의 동굴처럼 우리를 즐거운 놀이터로 바꾸어 주었다. 모기장 속에서 뒹굴며 동생들과 장난치던 일도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였다. 지난 장날에서 모기장이 눈에 띄기에 사서 방에 쳤더니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잊혀가는 것이지만 모처럼 지난날의 추억을 반추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전깃불 유감’ 중

“아주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적 추억으로 이따금 미소 짓는다. 전깃불도 없던 그때 여름, 저녁을 일찍 먹고 뒷동산에 올라 붉게 물든 저녁노을과 들판을 내려다보면 초록색 짙은 논과 밭이 영화를 보는 듯 펼쳐져 있었다. ……텔레비전이 동네에 들어오자 어른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들 화면 앞에 앉아 넋을 놓고 요지경 같은 화면에 빠져들었다. ……내가 시집을 가고 몇 년이 흐른 뒤 친정에 갔을 때 동네 분위기는 어색하고 남의 마을에 온 것 같았다. ……전깃불이 문화 혜택을 주어 좋기는 하지만, 숨바꼭질과 소꿉놀이 같은 밤 추억거리 모두를 앗아간 것 같다”

일상의 소소한 만남과 따스함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표현한 수필 작품이 눈에 띈다.

자연과 놀다 16

‘어떤 인연’ 중

"………마을 어귀에서 농부 아저씨를 만나 잠잘 곳을 물으니 본인 집을 가리키며 그곳에서 하루 저녁 묵으라고 하셨다.……나는 마치 아주 오래된 이웃처럼 편하게 하룻밤을 보냈다. ……하룻저녁 잠깐 뵙고 그 후 삼십년이 지났지만 난 아주머니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어떻게 우리 같은 사람을 잊지 않고 찾아 주었느냐고 손을 놓으실 줄 모르시며 감격하시는 순박한 모습이 옛날 그대로셨다."

 

자연과 놀다 24

‘돌멩이 하나’

“……어느 날 젊은 엄마가 오이지를 담갔는데 모두 물러서 먹지 못하고 버렸다고 하자 연세 드신 분이 돌로 눌러야 오이지가 무르지 않는다는 생활 지혜를 알려주셨다. ……다행히 강가에 자주 놀러나갈때마다 주워온 손바닥만 한 예쁜 돌들이 많았다.……며칠 후 그는 정말 잘 쓰고 있다며 보답으로 내게 선물까지 했다. ……돌을 선물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침 서울에 새 아파트로 이사 간 분을 찾아갈 때 나는 예쁜 돌을 몇 개 골라 포장해서 가지고 갔다. 돌의 효용 가치를 설명하고 드렸으나 그저 그렇게 받아주어서 좀 어색했었다. 얼마가 지난 후 그 분께 전화가 왔다. 대수롭지 않은 돌멩이인줄 알았더니 아주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며 어떻게 그런 선물을 생각할 수 있었냐고 하시며 친구에게도 하나 주셨다고 한다.

책장을 덮고 나니 그리운 추억속의 친구와 재회한 듯한 충만감이 찾아온다. 가을은 훌쩍 떠났지만 가을을 즐기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리라. 추억이 그리운 날, 최 작가의 작품을 차 한 잔 하듯 만나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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