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조 중엽에 막걸리 좋아하는 이씨 성의 판서가 있었다. 언젠가 아들들이 “왜 아버님은 좋은 약주나 소주가 있는데 막걸리만을 좋아하십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이 판서는 소 쓸개 세 개를 구해 오라 시켰다. 그 한 쓸개 주머니에는 소주를, 다른 쓸개 주머니에는 약주를, 나머지 쓸개 주머니에는 막걸리를 가득 채우고 처마 밑에 매어 두었다. 며칠이 지난 후에 이 쓸개 주머니를 열어 보니 소주 담은 주머니는 구멍이 송송 나 있고 약주 담은 주머니는 상해서 얇아져 있는데 막걸리 담은 주머니는 오히려 이전보다 두꺼워져 있었다.’ – 막걸리의 오덕 중에서 발췌.
최근 우리나라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김치는 우리민족의 고유전통음식이자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의 밥상에도 항상 빠지지 않는 국민음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런데 김치에 이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코앞에 두고 있는 또 다른 음식이 있다. 바로 막걸리다. 옛날 할머니가 직접 빚어서 만들던 막걸리가 인류무형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하니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몸에 좋은 웰빙 술
막걸리는 웰빙술이다. 막걸리를 즐기는 애주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6%내외의 알코올 도수에 단맛•신맛•쓴맛•떫은맛이 잘 어우러져 있고 여기에 감칠맛과 시원한 청량감까지 더해져 막걸리는 옛날부터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기 보다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농주로 많이 애용되어왔다. 게다가 구성성분의 약 10%가 각종 식이섬유, 유산균, 효모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몸에 좋은 술이라는 애주가의 주장에도 이견이 없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전국팔도 막걸리 장인들이 만드는 막걸리. 그 손맛이 궁금해진 기자는 막걸리 장인을 만나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에서 차로 약 1시간 반 남짓 달려 찾아간 곳은 경기도 가평군 하면 대보리. 우리네 정겨운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오전부터 내린 눈발 때문에 사방은 흰색으로 덮여있었고 미끄러운 눈 때문에 거북이 걸음으로 조심스럽게 도착한 곳은 막걸리 장인 막걸리협회 박성기 회장이 술을 빚고 있는 ㈜우리술. 박 회장은 기자가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막걸리에는 오덕이 있습니다. 취하되 인사불성일 만큼 취하지 않는 것이 일덕이고, 새참에 마시면 요기가 되는 것이 이덕이며, 힘 빠졌을 때 기운 돋우는 것이 삼덕입니다. 그리고 안되던 일도 마시고 넌지시 웃으면 되는 것이 사덕이며, 더불어 마시면 응어리가 풀리는 것이 오덕 입니다.
그래서 막걸리에는 주폭이 없습니다. 막걸리는 어지간히 많이 마시지 않는 한 만취하지 않죠. 낮은 알코올 도수에 가라앉은 건강한 곡물 건더기 술밥을 함께 먹기 때문에 취하기 전에 배가 먼저 부르고 다른 술처럼 마시면서 정신이 먼저 취하지 않습니다. 막걸리는 곡주라서 정신보다 몸에서 먼저 신호를 보내 정신은 그대로면서 흥을 돋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선조들은 막걸리를 마시면서 한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고 했나 봅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막걸리는 예부터 하층만 즐기던 술이 아니라 임금님도 즐기던 고급 술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나라제사 중 대사에 속하는 종묘제례 때 술을 올리는 3번 중 2번은 막걸리를, 1번은 청주를 올렸을 정도로 막걸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술이기도 하죠.

하지만 막걸리 역사에 어려운 시기도 있었는데 그 때가 바로 일제 강정기입니다. 일제 시대 전에는 막걸리를 각 가정에서 직접 빚어 먹곤 했는데 일제시대 때는 막걸리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각 마을에서 한 곳만 막걸리를 생산 하도록 강요했죠. 그리고 생산된 술은 다른 마을에서 소비되지 않도록 조치하여 막걸리 생산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가정마다 막걸리를 빚던 우리전통문화가 사실상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런 난관 속에서도 오늘날 막걸리가 아직도 국민주로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웰빙 건강 술이기 때문입니다. 막걸리에는 미네랄, 단백질, 식이섬유 등 몸에 좋은 다량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고 식이섬유가 알코올과 결합되면서 혈액순환, 장 활동 등의 인체 신진대사에도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동의보감에서는 막걸리를 빚는 데 필수재료인 누룩은 비장과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어 소화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 있고 효모가 살아있는 생 막걸리 농축액을 암세포에 투여한 결과 암세포 증식억제 효과도 있다는 연구 발표도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 이렇게 좋은 술이 또 있을까요”
막걸리의 세계화를 이끄는 막걸리 장인
㈜우리술 본사 초입에 위치한 막걸리공장 건물 벽에는 ‘우리 술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커다란 문구가 인상적으로 쓰여져 있다. 박 회장은 지난 2,000년 ㈜우리술 공장을 인수하면서부터 막걸리 수출에 경영 초점을 맞추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장 외관과 명함에 ‘우리 술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이다.
“세계 어떤 술보다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막걸리를 우리끼리만 마신다면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죠. 그래서 저는 막걸리를 빚기 시작하면서 막걸리를 세계적인 술로 만들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술에서 판매되는 막걸리는 일본, 중국, 베트남, 유럽 등지에 꾸준히 수출 되고 있는데 특히 일본에서는 우리 술 제품에 대한 평가가 아주 좋은 편입니다. 막걸리의 최대 장점은 부드러운 맛입니다. 세계 어느 인종이 처음 맛봐도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어요. 단연컨대 위스키, 와인 등의 외국 술과도 비교가 안 되는 훨씬 부드러운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술은 막걸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다양한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막걸리 전시만 했기 때문에 판매 실적이 저조했습니다. 외국인들 입장에서 처음 보는 술을 포장만 보고 구입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건강 주류’, ‘톡쏘는 막걸리’, ‘Korean Wine’, 과일이 함유된 막걸리 ‘쥬시락’ 등의 타이틀을 내걸고 해외 전시회에서 갖가지 행사와 시음회를 개최했습니다. 한번 막걸리를 맛본 외국인들은 열이면 열 모두 막걸리 맛을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더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막걸리의 세계화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막걸리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막걸리 업계가 뭉쳐야 합니다. 국내 800여 곳의 막걸리 장인들이 함께 공동 브랜드도 개발하고 적극적인 마케팅도 추진해야만 글로벌 시장에서 막걸리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습니다. 또한 정부의 꾸준한 지원도 필요합니다. 지난 10월 마지막 날은 3년 전 정부가 선포한 ‘막걸리의 날’이었지만 국민들은 물론 막걸리 애주가들도 잘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힘을 합쳐 막걸리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주류로 우뚝 세울지, 아니면 점점 잊혀져 가는 옛날 술로 남을지는 전국 막걸리 장인들의 몫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박회장은 올해 수출을 더 늘려 최대 100개국까지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막걸리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독특하고 좋은 술이라 자부하기 때문에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통한다라는 믿음으로 그는 ‘막걸리 한류’를 세계 곳곳에 전파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겠다고 매일같이 다짐하고 있다.
대를 이은 막걸리 장인 배혜정도가

“쌀을 갈아서 물에 담아 하룻밤 방치한 뒤 다음날 조리로 건져 건조한 후에 거칠게 부숩니다. 부순 쌀을 다시 쪄서 거친 누룩과 함께 섞습니다. 이것을 물이 담긴 항아리에 넣어 3~4일간 숙성시키면 잘 익은 막걸리가 만들어집니다. 소주나 맥주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도 이렇게 직접 만든 막걸리를 한번 맛보면 그 맛에 반해서 막걸리 애주가가 될 것입니다.”
기자에게 막걸리 제조법을 설명해준 사람은 ㈜국순당 설립자인 아버지 고(故) 배상면 장인의 대를 이어 막걸리를 빗고 있는 ㈜배혜정도가 배혜정 대표다. 고(故) 배상면 장인은 1960년 쌀을 원료로 한 ‘기린소주’를 개발하고 1982년 옛 문헌에서 찾아낸 ‘생쌀발효법에 의한 전통술 제조특허’를 취득한 후 꾸준한 연구 끝에 1991년 ‘백세주’ 전통주 시장을 열은 막걸리 장인이다. 배혜정 대표는 아버지의 장인정신을 이어 친환경 쌀, 자색고구마, 화성 송산포도 등의 지역특산물을 원료로 하여 유럽 등지의 와인이나 위스키보다 명품 술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로 막걸리의 고급화에 열중하고 있는 막걸리 2대 장인이다. 또한 배 대표의 형제들도 모두 부친의 뒤를 이어 배 대표의 오빠가 ‘국순당’을, 배 대표의 동생이 ‘배상면주가’를 경영하며 막걸리 대를 잇고 있다.

“전국적으로 막걸리는 800여 명의 장인들이 1,000여 종류의 막걸리를 지역 특산물과 연계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 막걸리의 경우에는 화성 시로부터 소개받은 우수한 포도 농가에서 재배한 송산포도를 주원료로 포도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고 1년 이내에 수확한 신선한 경기미를 주원료로 쌀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지역 농가에도 도움을 주고 유해물질 없는 신선한 고품질 막걸리를 생산하여 국민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함으로써 1석 2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죠.”
㈜배혜정도가가 생산하는 대표적인 제품들로는 10도 막걸리 ‘부자 10도’, 유기농 쌀로 빚은 ‘우곡주’, 유자를 혼합한 ‘유자 생막걸리’ 등이 있다. ‘우주곡’의 경우, 첫 맛은 덜 자극적일지 몰라도 1년 이내에 수확한 신선한 우리 쌀로만 막걸리를 빚기 때문에 마실수록 햅쌀 특유의 신선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부자 10도’의 경우 일반 막걸리에서 맛볼 수 없는 생 막걸리의 신선한 청량감과 곡물의 씹는 맛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최근에는 생강을 주원료로 한 데어먹는 따뜻한 막걸리도 개발 중에 있다고 한다.
막걸리는 우리 민족의 혼
막걸리는 술이자 밥이다. 막걸리는 고된 농사일에 땀 흘리며 일한 농부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농주이자 우리 선조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던 친구이다. 60~80년대는 경제개발 등과 함께 힘든 노동을 하던 우리 아버지들의 갈증을 풀어 주었고 90년대는 맥주와 소주에 밀려 국민주의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배고플 때 허기를 면하게 하고, 흥을 북돋아주며, 심하게 취하지 않게 하고, 안 되는 일을 되게 하고, 응어리를 풀어주는 막걸리는 막걸리 업계는 물론 2013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들이 앞장서서 지켜야 하는 우리 민족의 혼과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