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9년 어느날, 시카고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Frank McNamara)는 미국 뉴욕의 한 레스토랑 메이저스 케빈 그릴(Major’s Cabin Grill)에서 손님들을 초청해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음식값을 계산하려고 지갑을 찾았지만 다른 양복에 두고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크게 체면을 구긴 맥나마라는 아내가 와서 음식값을 지불한 뒤에야 레스토랑을 나올 수 있었다. 외상으로 식사할 수 있게 신용을 보증해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래서 그는 이듬해 동료인 랠프 쉬나이더(Ralph Schneider), 매티 시먼즈(Matty Simmons), 알프레드 블루밍데일(Alfred Bloomingdale)과 다이너스 클럽(Diner's Club)을 만들었다. 회원임을 증명하기 위해 판지(cardboard)로 카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 신용카드의 효시이다. 당시 부유층들이 여행이나 여가 비용을 결제하는 데 주로 사용했다. 다이너스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초기부터 거래마다 7%의 수수료를 챙겼다. 1961년 처음으로 플라스틱 카드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조각이 금융산업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요즘 핀테크가 뜨거운 키워드가 되었다. 핀테크란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이다. 핀테크가 기존 금융시스템을 파괴(disrupt)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렇지만 핀테크는 기존 금융산업의 사각지대에서 틈새시장을 뚫고 들어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 질서가 금융산업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ATM이 보편화되니 은행 지점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다. 드디어 플랫폼이 은행을 대신하는 세상이 왔다. 금융기관도 온라인 서비스업체가 되어가고 있다.
국내 대형은행은 바젤(Basel) 등 건전성 규제에 묶여 기업대출은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 위주로, 개인대출은 부동산 담보대출과 공무원 신용대출 확대에 몰두해왔다. 그에 따라 중소기업, 소상공인, 신용불량자들은 은행대출의 높은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신용도가 좋을 때 돈을 빌렸어도 깜빡 이자결제일을 잊어 며칠 연체하게 되면 신용도가 낮아지고 이후 대출연장이 거절되어 상환의 압박을 받게 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은행은 비가 오면 우산을 거두고, 쾌청하면 우산을 빌려주는 곳이라고 했겠는가
영국이나 미국과 중국에서 P2P대출(peer-to-peer lending)이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 2005년 영국에서 최초로 P2PL을 시작한 조파(Zopa)는 개인에게 대출해준다. 펀딩 서클(Funding Circle)은 기업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 프로스퍼(Prosper)와 렌딩 클럽(Lending Club)이 미국에서 P2PL 시장의 98%를 점한다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보도도 있다. 2014년 12월 11일 렌딩 클럽은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공모가 대비 56%오른 23.43달러로 첫 거래를 마쳤다.
조파(Zopa)는 합의가능영역(zone of possible agreement)의 약자이기도 하다. 대출도 일종의 협상이다. 조파에서는 공급자가 이자율, 기간 등을 제시하고 수요자가 선택하도록 했다. 그러나 공급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액만을 빌려주도록 했다. 예를 들어 수요자가 500파운드를 요청할 경우 50명 이상이 10파운드 이하씩 빌려주는 방식을 택하게 했다. 프로스퍼는 역경매(reverse auction) 방법을 사용한다. 수요자의 조건을 보고 공급자가 낮은 이자율 등을 제안한다. 미국은 기업형 P2PL과 관련한 일명 ‘JOBS(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 법’을 2012년 제정해 ‘연소득 10만달러 이하의 개인이 투자할 경우 2,000달러 이하 혹은 소득의 5% 이내’로 연간 투자 금액을 제한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있다.

온데크(OnDeck)는 선지급(merchant cash advance)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영업방법은 목돈을 우선 자영업자에게 빌려주고, 자영업자의 카드 매출액이 대부업체의 계좌로 들어가게 해서, 대부업체가 받을 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자영업자에게 송금해주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대출 대상은 개인이 아닌 자영업자들로 카드 매출실적이 좋아야 한다. 카드 매출이 일종의 담보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온데크는 지점이 하나도 없는 은행이다. 다트머쓰 대학에 다니던 미치 제이콥스(Mitch Jacobs)가 1993년 회사를 설립했고 2010년 언스트 앤 영(Ernst & Young)이 선정한 올해의 기업인 상을 수상했다. 온데크가 자랑하는 기술은 대출적격여부를 심사하는 시스템이다. 이 소프트웨어는 현금유동성, 신용도, SNS 데이터, 공적 자료 등 수천 개의 변수를 분석해 온데크 평점(OnDeck Score)을 산정한다. 그래서 대출심사는 수십 분, 길어야 몇 시간 만에 이루어진다. 온데크는 포브스가 선정한 2014년 미국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 11위에 올랐다. 2013년까지 온데크가 대출해준 금액은 15억 달러에 이른다. 온데크는 2014년 12월 17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해 2억 달러를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은행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이 빠른 대출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만큼 고객 정보를 충분히 확보해서 정확히 분석해 활용하고 있다. 대출에 FICO 스코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FICO 스코어는 지불 이력 35%, 대출 액수 30%, 신용거래 기간 15% 등 5개의 항목으로 평가한다. 국내의 KCB는 부채수준 35%, 연체 25%, 신용형태 24% 신용거래기간 16%를 기반으로 신용도를 평가한다. 미국에서 10만 달러 이하 대출을 받으려는 기업에 대해서는 신용평가 기관이 비용이나 시간을 고려해 기업실사(due diligence) 등을 꺼린다. 그 틈새를 온데크가 뚫은 것이다.
FICO 같은 기준에 따르면 대출을 받은 경력이 없거나 신용카드가 없으면 신용이 불량한 고객으로 분류된다. 당연히 은행은 대출도 꺼리거니와 이자도 높게 책정하려 한다. 그렇지만 그 고객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관계의 폭이나 질을 가늠할 수 있다. 많은 친구가 있고 친구들이 영향력이 있다면, 그리고 친구들의 평가가 좋다면 그 고객은 신용도가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기존 금융기관이 파고들지 못했던 곳에서 신용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에서의 사회적 지위, 온라인 명성, 개인의 영향력은 신용평가에 얼마든지 고려될 수 있는 요소인 것이다. 다행히 그게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평가가 가능하다. SNS가 아니었다면 개인의 뒤를 일일이 뒤지고 다녀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비즈니스가 다 유망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대출에는 손실이라는 리스크가 수반된다. 프로스퍼 등급 중 가장 리스크가 낮은 AA 등급에서도 연간 2% 미만의 손실을 예상한다. 중국에서는 도산하고 있는 P2PL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P2PL이 사실상 투자임에도 이익에 대해 이자소득세율인 15.4% 대신 비영업대금 이익에 대한 세율인 27.5%를 적용하기 때문에 성장에 제약이 많다.
By 김형중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