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의 독후감] 붓다의 치명적 농담
[김혁의 독후감] 붓다의 치명적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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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2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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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한형조)가 불교 일반에 대한 생각을 ‘금강경’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내용으로되어 있다. 책의 부제목이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로 되어 있는 것에서 저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큰 주제를 풀어놓는 방식이 아니므로 책의 작은 제목이나 내 용을 소개하는 식으로 살펴본다.

불교의 어려움

시각 - 불교는 상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과 세계를 본다. 불교의 가르침은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는 동 떨어진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다양성 - 불교는 계속 변화해 온 생명체로서 다양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언어 - 분량도 어마어마한데 언어조차 어렵다. 인도어를 중국어로 번역한 것에서 의미 전달의 문제가 있다.

경험 - 불교 경전은 진실의 그림자일 뿐, 본인이 경험을 해야 생명력을 얻는다.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실천해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표현 - 불교는 한 방편이므로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듯 불교를 떠나 세속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불교의 큰 문제

소통 부재가 문제다. 난해한 언어와 지루한 이야기로 소통이 안되고 있다.

금강경

금강경의 ‘금강’은 다이아몬드를 말하는데 인도신이 갖고 다니던 무기로서 ‘벼락’을 말한다는 학설도 있다. 혜능스님은 이 금강이 가리키는 바가 ‘불성’이라고 본다. 인간 내부에 있는 불성을 지혜의 불로 녹여 순수한 금강만이 남기를 당부한다. 돈교는 지금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이 바로 ‘절대’임을 일깨운다. 우리가 서있는 자리 너머에 깨달음이나 구원이나 정토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일제 초기 만공스님께 몰락한 궁중의 상궁 나인들이 스님을 찾아와 법문을 청했을 때 스님이 노래 한 자락을 읊는다.

‘저 산 딱따구리는 생나무도 잘도 뚫는데‥ 우리 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여인네들이 음담패설로 알아듣고 킥킥거리고 쑥덕거렸다. 스님의 간절한 법문인데이를 오해()한 것이다. 우리는 생나무를 다시 힘겹게 뚫을 필요가 없다.

그저 있는 구멍에 맞추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다. 그걸 모르고 어려워하다니‥‥. 장애는 내 마음 안에 있다. 이 안의 적을 부수는 것을 반야라 한다. 불교는 ‘불성’, ‘번뇌와 무지’, ‘반야’의 삼각구도로 되어 있다. 불성은 목표, 번뇌와 무지는 문제, 반야는 해결 방법을 지칭한다. ‘대승기신론’은 이를 각기 본각(本覺), 불각(不覺), 시각(始覺)으로 설정하여 길을 보여준다. 여기서 시각은 ‘그 모든 것이 내 탓이오’라는 작은 각성에서 시작한다.

기타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현각스님, 틱낫한 스님, 달라이 라마와 같은 이방 스님들은 일상적인 대화체의 비 권위적인 자세가 대중에게 잘 받아들여진 것으로 본다. 언어의 문제다. 불교한문을 그대로 들이대면 대중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반야’ 는 지혜를 뜻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런 지혜를 넘어서기 때문에 원어인 ‘반야’를 그대로 쓰고 있다.

삶의 목표는 쾌락이 아니다. 인간 속에는 의미와 유대의 인간적 욕구가 있다.

사바세계가 곤경과 비참에 빠진 이유는 집(集) 때문이다. 집(集)은 여러 계기가 모여서 즉 연기(緣起)하여 일어난 사태다. 여러 가지가 모여 일어난 사태이므로 제거할 수 있다. 모두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면 수많은 세계가 생겨나고, 마음이 꺼지면 수많은 세계가 사라진다’ 대승기신론의 구절이다.

눈이 있어 보는 게 아니라, 보려는 의지가 눈을 만들었다.

‘있다’를 뜻하는 한자 유(有)는 손이 볏단을 끌어 쥐고 있는 모습을 본뜨고 있고 이기적임을 뜻하는 사(私)는 벼를 칼로 베는 형상이다. 인간의 근원적 소유욕을 나타낸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아원자 세계의 내부 공간의 휑한 공간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불교의 무아는 내가 없으며 세상에 개입하는 나의 역할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허무주의가 아니다. 다만 그 얼굴을 단 하나의 고정된 지위로 간주하는 상견(常見)을 부정할 뿐이다.

음식을 바꾸고 양을 줄이는 대신 ‘음식을 느끼면’,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면 다이어트는 틀림없이 성공한다.

우리 마음이 완전하기에 더 이상 닦을 것도 찾을 것도 없는 것을 ‘돈오’라고 한다. 그래서 즉심즉불(卽心卽佛), 네가 곧 부처니 어디 딴 데서 찾을 생각을 말라고 한다. 이런 깨달음에 대한 지적 통찰은 그것을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살아 나가는 일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 노력을 점수(漸修)라고 한다. 돈오는 불교적 진실에 대한 지적 통찰이므로 시작이고 전제일 뿐이다.

현대인에게는 불교경전의 언어를 축자적으로 충실히 따라가는 소(疏)의 방식보다, 오해와 헛디딤의 위험은 크지만 과감한 해석과 체계를 제시하는 별기(別記)의 방식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by 칼럼니스트 김혁 교수

* 본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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