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이 16일 일본 증권거래소에 엔씨소프트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고 공시함으로써 국내 게임 1,2위 업체의 ‘합작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본사를 일본에 두고 있는 넥슨은 이날 엔씨소프트의 지분 15.08%(330만6897주) 전량을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했다. 주당 가격은 18만3000원, 총 처분금액은 6051억여원(634억엔)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넥슨이 매각한 지분 중 44만주(800억원)를 취득해 기존에 지분 10.0%에서 12.0%(262만8000주)로 늘었다.
넥슨은 2012년 엔씨소프트 지분 14.68%를 주당 25만원에 매입하고 지난해 10월 0.4%를 추가로 취득했다. 엔씨소프트와 미국 유명 게임업체 ‘일렉트로닉아츠(EA)’를 인수하기 위한 포석으로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 공대 1년 선후배 사이인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각각 1997년과 1994년 회사를 창립하고, 국내 게임업계에서 ‘신화’를 써 나가다가 의기투합해 ‘글로벌 게임업체’ 도약이라는 공동비전에 합의한 것. 당시 게임업계와 전문가들은 두 사람이 세계 게임시장에서 '큰일'을 한번 제대로 낼 것이라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EA 인수가 실패하자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불편한 관계가 됐다는 업계의 전언이다. 양측 모두 할 말은 있다. 김택진 대표는 엔씨소프트 개인지분을 넥슨에 팔아 EA를 인수할 ‘총알’을 마련했는데, 김정주 대표가 경영권에 손을 대면서 매우 불쾌해 했다는 전언이다.
넥슨이 지난 1월 엔씨소프트 지분 투자를 ‘투자’에서 ‘경영’으로 바꾸면서 불화는 본격화됐다는 것.
넥슨은 지분 매각 이유에 대해 “자본의 효율성을 높여 주주 가치에 기여하자는 기본 원칙에 따라 엔씨소프트 지분을 매각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김택진 대표가 수천억원의 ‘총알’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것에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급기야 넥슨은 지난 2월 “엔씨소프트가 모바일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넥슨의 이같은 움직임은 엔씨소프트가 지난 1월 정기임원 인사에서 김택진 대표 부인인 윤송이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킨 것 때문이라는 말도 관련업계에서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개최된 엔씨소프트 주총에서 윤송이 사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문이 지적되기도 했다.
넥슨이 ‘경영간섭’을 선언하자 엔씨소프트는 지난 2월 모바일 게임 1위업체인 넷마블게임즈를 끌어 들여 경영권을 방어했다. 김택진 대표와 넷마블의 지분을 합하면 20%에 육박해 최대주주 넥슨의 보유량(15.08%)을 넘는다. 이로써 주주총회에서 김택진 대표의 재선임은 무난하게 이뤄졌다.
한편 넥슨의 엔씨소프트 주식 매각은 블록딜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이는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거래시간 외 대량매매를 뜻한다.
엔씨소프트가 공시를 통해 매입 사실을 밝힌 것을 제외하면 누가 나머지 지분을 매입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
현재 엔씨소프트 최대주주는 지분 12.22%를 보유한 국민연금이다. 그러나 이번 블록딜에 중국 자본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관측들이 솔솔 흘러나오고 국내 게임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대표가 수개월 째 만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한국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두 주자가 이른 만남을 가져 국산게임의 글로벌시장 진출 동력을 이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