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운전기사를 상대로 ‘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정문선 현대비앤지스틸 부사장(42세)이 최근 운전기사 양모씨에게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폭언에 대한 사과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 부사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4남인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차남이다.
그러나 지난달 언론보도로 논란이 확산되고, 운전기사 양씨가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자 파장이 커질 것을 우려해 뒤늦게 사건을 무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과거 SK그룹 일가 최철원 씨의 ‘맷값’ 폭행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9일 현대비앤지스틸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양씨에게 초과 근무수당을 지급했으며, 양씨가 노동청에 낸 진정도 취하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미디어오늘’과 현대비앤지스틸 등에 따르면 양씨는 지난해 6월 하청(요역업체)에서 파견형식으로 정문선 부사장의 운전기사로 채용됐다. 근로계약서에 따른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간.
그러나 양씨는 매일 정 부사장의 압구정동 자택으로 새벽 6시 30분까지 출근했고 ‘야근’을 해야 했다. 퇴근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고 정 부사장이 퇴근 하는 시간, 주로 새벽이었다고 양씨는 주장했다. 물론 휴일에도 정 부사장의 일정이 있으면 어김없이 나와야 했다.
연장 수당이 있었지만 수당 시간 기준보다 초과해 근무를 했다는 것. 이와 관련 지난 4월 양씨는 현대비앤지스틸 인사팀장에게 초과 근무 수당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양씨는 1년 계약(파견)일이 되면 현대비앤지스틸의 계약직 전환이 될 것을 기대하고 참았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계약직 전환 불가. 여기까지는 양씨와 현대비앤지스틸측의 주장이 다르지 않다.
문제는 폭언 부분. 양씨는 살인적인 근로조건 보다 정 부사장의 일상적인 폭언을 참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정 부사장이 이발소 등 공개된 장소에서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퍼부었다는 것.
양씨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언어폭력과 모욕이 심한 날에는 정말 자살충동까지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정 부사장은 신문에 ”오해가 있었다.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아쉽다. 욕설의 경우에 가까운 사이끼리 '야 임마 열심히 해'라는 것을 욕설이라고 한다면 할 수 있는데, 아니라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운전기사 양씨는 33세로 정 부사장보다 아홉 살 아래다.
양씨는 회사측에 근로조건 개선과 초과 근로 수당 지급을 요청했지만, 결국 지난 8월 24일 해고 통지를 받았다.
이에 대해 현대비앤지스틸 관계자는 “일방적인 해고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양씨가 더 좋은 자리가 있다고 했고,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아 회사를 그만뒀을 뿐”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초과 근무수당 지급 요청내용을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강남지청 관계자는 “지난달 27일 현대측이 초과 근무수당을 지급하기로 합의를 했다. 진정인이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진정을 취하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합의를 하면서 현대측이 양씨에게 향후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확인서’를 요구했다는 것.
현대비앤지스틸 관계자는 “양씨가 신문 보도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우리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씨가 언론에 관련사실을 폭로하고 노동청에 진정까지 냈다가 갑자기 “사실과 다르다”고 ‘각서’를 써준 것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모종의 회유가 있었지 않았겠냐는 것. 초과 근무수당 외에 ‘위로금’이 지급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강남청 관계자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비앤지스틸 관계자 역시 “초과 근무수당 규모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확인서를 근거로) 신문사측에 정정보도를 요청하려고 했으나 사건이 확대될 것 같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는, 사회적인 파장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지난 2010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철원 씨의 ‘맷값 폭행’ 사건에 비유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베테랑’으로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건이다.
최씨는 SK본사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탱크로리 기사를 사무실로 불러 야구 방망이와 주먹으로 폭행한 뒤 ‘맷값’ 명목으로 2000만원을 건넸다가 구속된 바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벌가의 일탈행위는 잊혀 질 만하면 한번씩 불거진다”며 “재벌가의 갑질 횡포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