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그룹이 자산규모 3000억 이상의 비상장 계열사에도 사외이사 제도를 두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1조원 이상 계열사에는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한다. 기업 투명성 확보를 위해 감시를 강화하는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계획대로라면 사외이사를 운영하는 롯데 계열사는 현재 14개에서 25개까지 늘어난다.
사외이사제도는 경영진이나 대주주의 독단적 의사결정을 견제하기 위해 상법에 규정하고 있다. 주로 대학교수나 퇴직 고위관료, 사회 명망가들로 구성된다.
사외이사는 그러나 지난 1992년 도입 이래 ‘사외이사=거수기’라는 등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재계는 롯데의 이번 행보를 신동빈-동주 형제의 경영권 다툼과 난마처럼 얽혀있는 순화출자 고리로 인해 악화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사외이사는 제도 본연의 취지는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통계만 봐도 실상 파악은 어렵지 않다.
기업 경영성과 분석업체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기업 사외이사들 중 무려 99.7%가 상정된 이사회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회사 경영진이 올린 안건에 손만 들어 준 셈이다. 37개 조사대상 대기업중 3분의 2에 달하는 25곳은 찬성률이 100%로 나타났다.
총 692명의 사외이사들이 3774건의 안건에 대해 총 1만3284표의 의결권을 행사했으며, 이중99.7%인 1만3243표가 '찬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대는 13표로 의결권 1000개 중 1개꼴에 불과했다. 나머지 28표는 유보, 보류, 기타 등으로 나타났다.
10대 그룹 중에서 100% 찬성률을 보인 곳은 역시 롯데그룹을 포함 P사, H사, H사 등 4곳으로 나타났다. 롯데는 43명의 사외이사가 278건의 안건에 1130표의 의결권을 행사했고, 찬성률은 100%.
그렇다면 이들 사외이사의 연봉은 지난해 평균 연봉 4900만원, 이사회에 한번 참석할 때마다 평균 450만원씩을 받아갔다. 경영진의 독주를 감시·감독하기 보다는 도리어 보호하거나 상부상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도 롯데는 이번 계획을 발표하면서 "각계 전문가로부터 폭넓은 의견 수렴을 통해 경영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확대하고 있다"고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다.
자신을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소개한 한 학생은 “지난달 청년유니온이 신동빈 회장을 최악의 청년 착취 기업인으로 선정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며 “롯데는 거수기 일자리 늘리기보다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에 노력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