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사들의 기업분석 보고서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매수(BUY)' 일색이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기업분석 보고서에서 ’매도(SELL)' 보고서 비중이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9일 증권정보 제공 사이트인 ‘팍스넷’이 에프엔가이드에 의뢰해 37개 증권사가 발표한 960개 상장사 기업분석 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매도’ 의견을 낸 보고서가 전체의 0.45%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매도’ 비중은 0.12%.
반면 ‘강력매수’는 156건(0.77%), ‘매수’는 1만7995건(88.81%), ‘중립’은 2019건(9.96%)에 달했다.
비중축소를 포함한 ‘매도’ 의견을 가장 많이 낸 증권사는 하나금융투자로 전체 218개 중 23개였다. 그 뒤를 한국투자증권(15개), 미래에셋증권(12개)이 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한화증권이 가장 높아 총 13개 중 3개가 매도 의견으로, 23%를 차지했다. 하나금융투자(8.1%), 메리츠종금(2.2%), 동부증권(1.5%) 순으로 조사됐다.
반면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SK증권, 유안타증권, 교보증권 등은 24개 증권사는 ‘매도’ 의견을 단 한건도 내지 않았다.
증권가와 투자금융업계는 지난해 대비 ‘매도’ 의견이 소폭 상승했지만 ‘바람직’한 변화라고 평가하고 있다.
상장기업이 곧 고객이자 ‘정보처’인 증권사로서는 고객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보고서(매도)를 발표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매도 의견은 곧 주가가 빠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증시호황이 수익과 직결되는 증권사들의 수익구조상 ‘제 발등 때리기’를 금기시 하는 분위기다.
연합인포맥스 리서치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삼성물산의 역성장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보고서를 제시하지 않았다. ‘매도’도 아니고 ‘매수’도 아닌 아예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삼성물산은 전년 동기대비 47.9% 하락한 756억원의 2분기 영업이익을 발표했다. 로이힐 프로젝트의 완공 임박에 따른 이익 반영 축소와 주택 분양 감소 등 이슈가 산적했지만,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침묵했다.
보고서를 발표한 증권사는 KB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 등 고작 5개. 반면 같은 기간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각각 17건, GS건설에 대해서는 12건의 실적 보고서가 발표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을 눈앞에 둔 상황으로, 삼성그룹 계열 상장사들의 증권가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삼성뿐만 아니라 상장 계열사를 대거 거느리고 있는 그룹의 악재 이슈를 리포트 하기에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당시 한화증권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잇따라 발표해 증권가에 파란을 일으켰다. 한화그룹과 삼성그룹이 빅딜을 성사시키는 와중이어서 한화증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여의도 돈키호테’로 불리는 주진형 한화증권 사장은 2013년 8월 취임하면서 자사 애널리스트들에게 보고서의 10%를 매도 의견으로 제시하라는 주문했다.
실제로 한화증권은 이후, 이번처럼 국내 증권사들 가운데 가장 많은 ‘매도’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처음에는 주 사장과 한화증권의 행보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증권사들이 많았다”며 “그러나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인한 여러 잡음들이 터져 나오면서 주 사장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돌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 모두 매수 의견 일색인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문제점을 알면서도 개선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 오너와 CEO의 의지에 달린 것 아니겠냐”며 “차차 매도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증권사 보고서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의견비율 공시제도'가 지난 5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증권사들이 보고서에 자사의 투자의견 비율을 기재하게 하고 있지만,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여전히 ‘매도’ 의견은 극기 일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