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사범과 '명예프로9단' 알파고
이세돌사범과 '명예프로9단' 알파고
  • By 김형중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교수)
  • 승인 2016.03.15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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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 (왼쪽), 알파고 (오른쪽)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을 4:1로 이겼다. 이세돌의 전패가 예상됐지만 그의 1승으로 인해 알파고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입증됐다. 판후이(Fan Hui) 2단을 5전 전승으로 이기고, 여세를 몰아 이세돌에게 3게임 연속 승리했을 때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컴퓨터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세돌이 1승을 거두자 상황이 반전됐다.

하지만 인간이 컴퓨터를 이기는 것은 점차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의 허점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도 어렵다. 결국 소프트웨어는 인간이 만들고, 완전한 학습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퀴즈대결에서 이긴 왓슨(Watson)의 경우를 보면 학습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왓슨은 66문제를 맞추고 9개를 틀렸다. 틀린 문제를 보면 컴퓨터의 약점이 보인다. 문제 카테고리가 ‘미국의 도시들’이었고 ‘이 도시의 가장 큰 공항은 2차 대전 영웅의 이름을 땄고, 두 번째 큰 공항은 2차 대전 전장 이름을 땄다’는 문제에 대해 퀴즈왕들은 시카고라고 정답을 썼으나 왓슨은 토론토라고 오답을 썼다.

미국의 전설적인 육상선수 조지 아이서(George Eyser) 문제도 좋은 예다. 아이서는 의족의 몸으로 1904년 올림픽에서 하루 한 날 금메달 셋, 은메달 둘, 동메달 하나를 받았다. 문제는 조지 아이서의 해부학적 특이성을 물었다. 퀴즈 쇼 제퍼디에서 74승을 거둔 젠 케닝스가 답했다. “한 손을 잃음”. 왓슨이 바로 답했다. “다리”. 퀴즈에서 원한 답은 “한 다리를 잃음”이었다. 속된 말로 왓슨은 답을 주워 먹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컴퓨터가 잘 할 수 있는 게 있고, 인간이 잘 할 수 있는 게 있다. 그래서 모라벡(Moravec)의 역설이 만들어졌다. 쉬운 것은 어렵고, 어려운 것은 쉽다는 게 그 역설이다. 네 살짜리 어린애는 사진 속의 물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만 컴퓨터에게는 그게 지극히 어렵다. 인간이 놀라는 것은 그 어렵다는 바둑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됐기 때문이다.

김형중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교수

인공지능이 크게 진화했지만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이세돌 같은 스승이 필요하다. 그러나 앞으로 알파고가 인간을 상대로 바둑 대결을 더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딥 블루가 카스파로프에게 이긴 후, 왓슨이 켄 제닝스 등을 이긴 후, 인공지능의 탁월함을 재확인하지 않았다. 그것으로도 IBM은 충분히 홍보효과를 누렸기 때문이다.

구글이 이세돌을 선정한 이유는 그가 국제 기전에서 15승을 거두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현역 기사 중 하나로 꼽혀서다. 이세돌에게 4승을 거둔 것으로 구글은 이미 기대 이상의 홍보효과를 누렸다. 여세를 몰아 구글은 안전한 자율자동차를 선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사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최고 수준의 기사도 누를 정도로 정교하다는 것을 보여 충분히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구글의 기술력이 최고임을 입증했다. 구글은 영리하게 홍보했고, 주가를 크게 끌어 올렸다.

알파고가 5전 전승을 거두었다면 구글은 정말 기뻤을 것이다. 그런데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구글의 자존심이 뭉개졌다. 궁지에 몰리자 엉뚱한 수를 남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알파고는 상당히 신뢰를 잃었다. 악수를 남발하기 전에 쿨하게 돌을 던졌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알파고는 지고도 이겼을 것이다.

구글은 바둑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자사의 기술력만 한번 입증하면 된다. 그러니 또 이세돌 같은 전설적인 기사들과 대국을 벌여 자사의 소프트웨어에 아직도 허점이 있음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

한국기원의 명예 프로 9단이 된 알파고는 기력 증진을 위해 이세돌 같은 천재기사를 사범으로 모셔야 한다. 이세돌은 한국인의 재능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한국은 그런 기사를 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힘들 때 박세리가 하얀 발을 드러내며 LPGA에서 우승하던 감격이 다시 느껴지는 기분이다. 이세돌처럼 불굴의 정신으로 한국 경제를 함께 일으켜 세우면 좋겠다.

알파고와 이세돌은 위키피디아에 영원히 이름이 남을 것이다. 1202대의 컴퓨터와 의연히 싸워 이긴 이세돌은 이 봄에 우리에게 상큼한 청량제를 선사했고, 인간이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서 기뻤다.

(김형중 교수/khj-@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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