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에서 ‘성공의 비밀’ 따위는 없다. 굳이 성공비결을 찾자면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기술과 제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운 좋게 그 시기에 그 기술이 필요해서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의 비슷한 서비스들과 경쟁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대개의 경우 잔인하고 냉정한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여태까지 유행했던 수많은 인터넷 서비스들이 약속했던 미래는 결코 온 적이 없다. 그저 업체들의 마케팅에 소비자들이 놀아났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 5년 전 쓰여진 IT책을 집어든 이유
‘한국의 IT산업의 멸망’(북하우스, 저자 김인성)은 제목부터 프롤로그까지 꽤나 부정적인 시선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책 전체를 읽고 나면 수긍이 간다. 왜 그럴까.
저자인 김인성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전 교수가 책을 쓴 2011년은 지금은 퇴물이 되어버린 싸이월드가 그나마 인기를 이어가고 있던 때였다. 아직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우리나라에서 자리를 틀지도 못했던 때였기도 했고,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 시장에서 내수를 위협하는 ‘외국 문물’ 정도로 여겨지던 당시였다. 하지만, 2016년인 지금에도 앞서 언급한 말들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그 사이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폐쇄성이 한국IT산업의 멸망 자초
저자는 IT 붐이 일어났던 때부터 엔지니어로 활약하면서 IT 강국 코리아라는 허울 뒤에 감춰진 부끄러운 폐쇄성, 즉 애국심으로 포장된 ‘촌스러움’을 면밀하게 지적했다.
그는 존재 이유가 의심스러운 각종 규제가 만들어지면서 인터넷이 촌스러워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웹 브라우저에서만 가능한 결제시스템, 그 자체가 바이러스 보다 더 극악하게 사용자들을 괴롭히는 보안 프로그램, 아무런 의미 없이 비용만 들게 하는 공인인증서들은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한국만의 방식으로만 가능하도록 제한함으로써 기술 수출의 길까지 막아버버렸다고 강조했다.
또 외국에서 한국 인터넷 쇼핑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용자들의 일상적인 컴퓨터 사용을 방해하는 소모적인 환경을 만들어버렸다고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2014년 벌어진 ‘천송이 코트’ 논란을 예견한 듯 하다. 정부부처는 박 대통령의 지적에 따라 중국인이 살 수 있게 공인인증서를 조항을 없애겠다고 했지만, 2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액티브 X를 대신한 각종 exe프로그램 또는 공인인증서를 깔아야 한다. 결국 중국인이 ‘천송이 코트’를 사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는 또 포털 등 인터넷 업체들은 세계 표준을 무시하고 국내시장 독점을 하며 스스로 글로벌 기업이 되길 포기했고, 이동통신사들은 음성통화로 얻는 이익을 위해 억지로 신기술 개척을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IPTV 사업자들도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일부러 품질을 떨어뜨리는 꼼수를 부렸다고 저자는 비판했다.
<> 진정한 애국심 '애국 마케팅'에 놀아나지 않는 것
때문에 저자는 인터넷 시대를 살고 있는 소비자들이 이제는 국내기업에 보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진정한 애국’이라는 것이다. 과격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필요한 시선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미 한국의 재벌들은 언론과 권력을 장악하고 소비자 위에 군림하는 괴물로 변했고, 그 어떤 조직도 이들과 맞서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들을 바꿀 수 있는 건 오로지 소비자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간에는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소위 ‘밀어준’ 대기업들의 끝모를 애국심 종용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런 정신으로 수십년간 우리 기업들을 밀어주었는데 그들은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계속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분배는 안 된다고 한다. 여전히 외국보다 더 비싸게 사달라고 하고 환율이 올랐을 때 높인 가격은 환율이 내려도 낮추지 않는다. 다국적기업들과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우리의 희생을 요구한다. 그들은 외국 기업과의 게임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희생’이라는 히든 카드를 결코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2016년에도 한국 소비자들은 국내 대기업들의 ‘애국심 마케팅’을 불편해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기업이니까’ 하며 소비를 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무엇이 붐이 사그러진 IT산업을 회생하는 길일까. 책을 읽어보면, 일리 있는 해답들에 공감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