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단계판매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유통혁신’을 제창하며 1980년대 말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복잡한 중간유통 과정을 줄여 이익을 소비자에게 돌려준다는 마케팅 기법은 낯설지만 합리적이었고 누구나 무자본으로 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설명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고수익을 미끼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의 제품을 강매하거나 불법 합숙에 대출까지 강요하는 등 불법적 행태가 성행하며 다단계판매는 ‘피라미드 사기’라는 이미지로 점철된 채 좀처럼 음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단계판매가 합법적으로 수용된 것은 1995년 1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이 새로 개정·공포되면서부터다. 미국과 일본에 의해 유통시장 개방 압력을 받고 있던 정부가 규제일변도였던 기존의 방판법을 개정해 제도권 내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요즘, 다시금 다단계판매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국내 이통업계 3위인 LG유플러스의 다단계 대리점 IFCI가 사기 및 방문판매법 위반으로 최근 피소를 당한 것이다.
IFCI 통신다단계 피해자모임 김한성 대표는 최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권영성 IFCI 대표사업자 등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 대표는 "휴대폰 개통만 하면 누구든지 고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했지만 약속된 금액은 실제로는 에메랄드 직급에 올라야만 가능한 수익으로 이는 전체 회원의 0.05%에 그친다“며 이는 방문판매법 23조 2항 금지행위(허위ㆍ과장광고)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통계를 보면 김 대표의 주장대로 2014년 10만 명이 넘는 IFCI 판매원 가운데 9만 명 정도는 월 4만원도 벌지 못했다. 연간 한 푼도 벌지 못한 사람도 4만 명이나 됐다. 최상위 1% 미만에 속한 사람만 연간 1천만 원 넘는 돈을 벌었다.
고가요금제나 위약금, 요금대납 등으로 수입보다 더 많은 지출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4년 12월부터 2015년 5월까지 후원수당을 받는 브론즈 직급으로 승급한 IFCI 회원은 총 7만4천347명으로 이 가운데 80%인 5만9천496명은 스스로 휴대폰을 구매함으로써 브론즈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통신 다단계판매의 위법성에 대한 이의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방통위는 LG유플러스가 다단계 및 일반 대리점에 요금수수료, 판매 장려금 등을 과도하게 차별 지급해 이용자 차별을 유도했다며 23억7천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7개 다단계 업체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내리고 각 100만~2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지난 5월에는 IFCI, B&S솔루션, NEXT, 아이원 등 4개 이동통신 다단계 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방문판매법상 다단계업체는 160만원이 넘는 제품을 팔아선 안되지만 지난해 6월 기준으로 IFCI는 최소 7만6천 건, NEXT는 3만3천 건 이상의 160만원 초과 이동통신 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IFCI와 아이원은 다단계판매원에게 공급한 상품가격의 35%를 넘는 후원 수당을 지급할 수 없도록 금지한 법도 어겼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은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불복하고 서울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휴대폰 가격을 `단말기값+2년 약정요금`으로 산출한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부당하다며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다단계를 통한 피해 규모에 비하면 솜방망이에 불과한 시정명령과 과태료 처분 등의 강도를 높이고 실효성 있는 관련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휴대폰 다단계 판매가 법의 사각지대에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에 방판법 뿐만 아니라 단통법, 전기통신사업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 교묘히 법망을 회피할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리점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며 책임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이동통신사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도 필요해 보인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것처럼 다단계 판매로 발생한 수익을 챙기는 이상 곰의 위법행위에 대한 책임 또한 연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