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 전 일이다. 국제적인 e스포츠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강제적 셧다운제’로 인해 한국 대표로 선발되지 못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스타크래프트 아이런스퀴드Ⅱ 한국대표 선발전’에 나선 스타테일 팀 소속의 이승현 선수에게 벌어진 일이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이 선수는 강제적 셧다운제 대상임을 깜박하고 대회에 참가했다가 탈락의 불운을 맛보았고 선발전을 전 세계로 중계중이던 트위치TV 채팅창은 외국인들의 실소와 조롱으로 난무했다. “What Law" "Poor Korean gamers"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청소년의 게임 접속이 차단되던 강제적 셧다운제가 도입 5년만에 개선된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발굴하고 선순환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강제적 셧다운제 대신 ‘부모선택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부모선택제의 골자는 부모 등 친권자가 게임사에 요청할 경우 16세 미만 청소년도 심야시간(자정~새벽 6시)에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제적 셧다운제 도입을 주도했던 여성가족부가 폐지에 동의하고 오는 11월께 부모선택제 등의 내용을 담은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게임업계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정부가 게임산업을 규제 대상에서 육성해야 할 문화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하나 셧다운제가 당초 실효성이 없는 제도였기에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의견이다. 부모선택제 추진 배경으로 ‘디지털 시대 진로교육으로 활용’, ‘학교교육과 연계한 균형 잡힌 게임 이용’ 등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규제 개선을 빙자한 명분 강화라는 것이다.
반면 강제적 셧다운제의 존립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청소년성상담센터 ‘탁틴내일’은 지난 20일 성명서를 통해 셧다운제 완화를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셧다운제 완화는 가족 내 갈등만 부추길 뿐’이며 ‘심야시간대의 인터넷게임 제공시간 제한은 건강권, 수면권 등 아동청소년 보호의 권리 보장’이라는 주장이다.
2011년 도입된 강제적 셧다운제는 그동안 게임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1년 18.5%에 달했던 게임산업 성장률은 2013년 -0.3%로 곤두박질쳤다. 업계에서는 셧다운제 이전 200개에 육박했던 국내 대학의 게임 관련학과가 현재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화연대, 게임협회 등이 강제적 셧다운제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했으나 헌법재판소가 합헌 7, 위헌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리며 비판이 잇따랐고, 19대 국회에서는 폐지와 개선을 골자로 하는 입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이러는 사이 한류 컨텐츠로 수출 효자 품목이었던 국내 게임시장은 외국계 게임에 잠식되었고 한때 잘 나가던 게임회사들은 문을 닫거나 중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편 부모선택제가 20대 국회에서 발의된다지만 현재와 같은 내용으로는 효과에 대한 의구심만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우선 복잡한 절차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 ‘셧다운제’ 제외 요청을 하는 과정에서 자녀와 부모의 본인인증 등을 거치는 것은 사실상 부모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힘들게 한다.
친권자가 ‘허락한 게임’만 할 수 있어 모든 게임을 해제하지 않는 한 국한된 게임만 즐길 수 있는 점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자녀가 새로운 게임을 할 때마다 게임사에 셧다운 해제 신청을 다시 할만큼 게임에 호의적인 부모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중 규제에 대한 해결방안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여가부의 부모선택제는 문체부의 ‘선택적 셧다운제(게임시간선택제)’와 크게 변별력이 없어 보인다. 유사한 두 개의 규제를 각기 다른 부처에서 관할하고 있는 셈이다. ‘청소년 보호'와 '시장 육성'이라는 두 가지 공익이 부딪히는 만큼 근시안적 접근이 아닌 포괄적인 시각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